바코드에서 베리칩과 백신까지 이어진 공포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표’와 연결하여 성도들을 두려움에 빠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뉴스 종말론’이다.
한때는 바코드가 짐승의 표라고 했다. 이후 신용카드와 전자결제가 등장하자 현금 없는 사회가 짐승의 체제를 준비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몸속에 삽입할 수 있는 베리칩·RFID가 알려지자 이제야 진짜 짐승의 표가 등장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심지어 백신을 짐승의 표와 연결하는 주장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
대상은 계속 바뀌었지만 공포의 내용은 거의 같았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짐승의 표가 내 몸속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이러한 공포는 계시록 본문을 제대로 읽으면 사라진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본문의 오독(誤讀)에 있기 때문이다.
1. 그 사건은 특정한 때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일어난다
계시록은 짐승의 표를 어느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막연한 위험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계시록 13장은 짐승이 실제로 권세를 행사하고,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 경배하며, 그의 형상이 세워지고,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죽임을 당하며, 사람들이 표를 받도록 강요받는 구체적인 상황을 기록한다. 계시록은 이들을 반복해서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한다(계 13:8, 12, 14).
그러므로 짐승의 표를 이해할 때는 먼저 그때 땅에 거주하면서 실제로 짐승의 통치와 경배 체제 아래 놓이는 사람들이라는 본문의 시간적, 역사적 상황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때 "교회"는 하늘에 거한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오늘 새로운 기술 하나가 등장했다고 그것을 떼어 내어 곧바로 짐승의 표라고 부르는 것은 이 문맥을 건너뛴 잘못된 해석이다.
2. 짐승에게 '경배'하며 그의 표를 받는다
계시록 14장 9절은 더욱 분명하게 선언한다.
“If any man worship the beast and his image, and receive his mark in his forehead, or in his hand,”
(만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마에나 손에 그의 표를 받으면)
11절에서도 경배와 표가 다시 함께 나오고, 계시록 20장 4절에서는 반대로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았으며 그의 표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따라서 계시록에서 짐승에게 경배하는 것과 표를 받는 것은 서로 아무 관계없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짐승에 대한 복종이라는 단일한 체제 안에서 함께 움직인다.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표를 받는다.
3. “나도 모르게 표를 받으면 어쩌지?”라는 공포의 실체
바로 여기서 '뉴스 종말론'의 가장 큰 문제가 드러난다.
계시록 어디에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물질이나 기술이 몸속으로 들어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짐승의 표를 받아 버린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본문은 짐승이 등장하고, 그의 형상이 세워지고, 경배가 강요되며, 그에게 경배하는 것과 그의 표를 받는 것을 반복해서 함께 기록한다.
그런데 이 문맥을 떼어 버리면 무엇이든 짐승의 표가 될 수 있다.
바코드가 등장하면 바코드가 되고, 베리칩이 등장하면 베리칩이 되고, 백신이 등장하면 백신이 된다.
앞으로 새로운 생체인식 기술이나 디지털 결제 수단이 등장하면 또 그것이 짐승의 표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은 성경으로 뉴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를 보고 성경을 끼워 맞추는 것이다.
결론: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경배다
우리가 아직 짐승의 표의 구체적인 최종 형태를 모두 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성경이 밝히지 않은 것을 미리 단정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성경이 밝힌 것은 분명하다.
그때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짐승의 통치 아래 놓이고,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며 그의 표를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을까?”가 아니다. 그런 공포 자체가 계시록 본문이 말하지 않는 내용을 덧붙인 오독에서 생겨난 것이다.
바코드 공포가 지나가자 베리칩 공포가 왔고, 베리칩 공포 뒤에는 백신 공포가 찾아왔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변하지 않는다.
뉴스 종말론이 만들어 내는 공포는 시대마다 대상을 바꾸지만, 계시록의 경고는 처음부터 분명하다. 그때 땅에 거하는 사람들이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며 그의 표를 받는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경배이며, 짐승의 표는 그 짐승에 대한 복종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성경을 뉴스에 맞추지 말아야 한다. 뉴스를 성경으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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