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가 아는 메이지 유신
한국인에게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은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서양의 제도와 과학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근대 국가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등장했고, 일본은 군사력을 키워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조선을 침략하고 식민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나아갔다.
그런데 이 역사에는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있다. 일본이 서양의 제도와 지식을 받아들이며 제국주의로 나아가던 바로 그 시대에, 일본 땅에서는 전혀 다른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다.
성경이 일본어로 번역되고 있었던 것이다.
2. 서양을 번역한 일본, 성경을 번역한 선교사들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서양의 지식을 일본어로 옮기는 작업이 활발했다. 메이지 정부는 서양의 군사·과학·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근대화를 추진했다.
이와 동시에 요코하마에서는 또 다른 번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임스 커티스 헵번(James Curtis Hepburn), 새뮤얼 로빈스 브라운(S. R. Brown) 등 영미권 개신교 선교사들과 일본인 협력자들이 성경을 일본어로 번역하기 시작한 것이다.
1872년 선교사 회의에서 성경 공동번역이 결정된 후, 1874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추진되었다. 한쪽에서는 서양의 힘과 제도를 받아들여 제국을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본인의 언어로 옮기고 있었다.
같은 시대에 전혀 다른 두 길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3. 그 번역에는 킹제임스성경이 있었다
초기 일본어 성경 번역에서 번역자들이 중요한 참고 성경으로 사용한 것 가운데 하나가 킹제임스성경(King James Bible)이었다.
물론 메이지 원역을 단순히 ‘킹제임스성경의 일본어 번역’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번역자들은 KJB뿐만 아니라 한문 성경도 중요하게 참고했다. 특히 일본어 성경의 어휘와 문체에는 한문 성경의 영향도 상당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880년 신약성경이 완성되었고, 1887년 구약성경까지 완성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메이지 원역(明治元訳)’이라 불리는 일본 최초의 성경 완역이다. 격조 높은 문어체로 번역된 이 성경은 이후 일본 기독교뿐만 아니라 근대 일본어 문체와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4. 성경을 가졌지만 성경의 길로 가지 않은 일본
바로 여기에 역사의 묘한 역설이 있다. 일본은 자국어로 된 성경을 갖게 되었지만, 국가가 걸어간 길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달랐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세상의 통치자와 국가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가르친다. 그러나 근대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를 결집시키고 군사력을 확대하며 제국주의의 길로 나아갔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고, 아시아·태평양 전역으로 전쟁을 확대했다.
일본어 성경은 존재했지만, 일본 제국은 성경을 따르지 않았다.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말씀을 ‘따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역사가 보여준다.
5. 칼로 세운 제국은 사라지고, 번역된 말씀은 남았다
메이지 시대 일본은 서양의 군사·법·과학을 받아들였고, 선교사들은 성경을 일본어로 옮겼다.
그 이후의 역사는 분명하다. 일본은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으나 결국 전쟁에서 패망했고, 일본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시대에 번역된 성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1887년 완성된 메이지 원역은 오늘날에도 일본 성경 번역사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
한 시대에 제국을 세우는 작업과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하나는 제국의 힘을 키우기 위한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국어로 옮기는 일이었다.
칼로 세운 제국은 사라졌지만, 언어로 옮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남았다.
6. 메이지 원역과 킹제임스성경의 본문 비교
메이지 원역을 살펴보면 오늘날 여러 현대역본에서 빠져 있는 구절들이 상당수 그대로 들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글 개역성경에서 ‘없음’으로 처리된 마태복음 17장 21절, 18장 11절, 23장 14절, 마가복음 9장 44절과 46절, 11장 26절, 15장 28절, 누가복음 17장 36절, 23장 17절, 사도행전 8장 37절과 28장 29절, 로마서 16장 24절 등이 메이지 원역에는 들어 있다. 반면 사도행전 15장 34절은 그렇지 않다.
또 마태복음 6장 33절, 마가복음 1장 2절과 10장 24절, 누가복음 4장 8절, 요한복음 1장 18절과 3장 13절 등 본문 차이가 알려진 여러 구절에서도 메이지 원역은 킹제임스성경과 일치하거나 매우 가까운 본문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구절이 킹제임스성경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킹제임스성경 요한일서 5장 7절에 기록된 '하늘의 세 증언자'에 관한 본문은 메이지 원역에 들어 있지 않으며, 요한일서 4장 3절과 골로새서 1장 14절 등에서도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메이지 원역을 단순히 ‘일본어 킹제임스성경’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번역자들은 킹제임스성경을 중요한 영어 참고 성경으로 사용했지만, 동시에 한문 성경을 비롯한 여러 자료를 참고했다. 그럼에도 메이지 원역이 오늘날 여러 현대역본에서 사라진 구절과 표현을 상당수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 결론적 평가
메이지 원역은 킹제임스성경의 영향을 분명히 받은 초기 일본어 성경이지만, KJB를 그대로 일본어로 옮긴 번역본은 아니다. 여러 번역 자료가 함께 사용되었으며, 개별 구절에서는 KJB와 일치하는 곳과 다른 곳이 모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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