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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문맥과 어휘들

지옥은 하나다 — 단일한 장소, 그러나 더 엄중한 심판

by 김재근의 Insight 2026. 9. 2.

단일한 장소

킹제임스성경 신약은 게헨나(Gehenna), 하데스(Hades), 타르타로스(Tartarus)라는 서로 다른 그리스어 단어들을 성경 영어로 번역하면서 모두 hell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사용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신학자와 번역자는 이 단어들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각각 다른 장소와 개념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데스는 ‘죽은 자의 처소’, 게헨나는 ‘형벌의 불’, 타르타로스는 또 다른 별개의 장소라는 식이다.

그러나 원어(原語) 단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다른 장소를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단어의 차이가 곧 장소의 차이는 아니다.

 

우리말에서도 하나의 장소를 서로 다른 단어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죄인을 가두는 장소를 ‘감옥(監獄)’이라고도 하고, ‘형무소(刑務所)’라고도 하며, 오늘날에는 ‘교도소(矯導所)’라고 부른다. 사용된 시대와 제도적 배경에는 차이가 있지만, 단어가 셋이라고 해서 죄인을 가두는 장소라는 실체까지 세 개로 쪼개지는 것은 아니다.

감옥, 형무소, 교도소  명칭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실체는 같다. 단어의 차이가 곧 장소의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게헨나, 하데스, 타르타로스도 단어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다른 장소라고 단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원어(原語) 단어가 몇 개인가가 아니라 킹제임스성경이 그것을 어떻게 번역했는가이다.

킹제임스성경은 서로 다른 세 단어를 옮기면서 모두 hell이라고 번역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 결과에서는 서로 다른 그리스어 세 단어가 hell이라는 하나의 성경 영어 단어로 제시된다.

따라서 킹제임스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다시 원어(原語) 단어를 끌어와 각각 다른 장소로 나누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KJB의 hell을 우리말로 옮기면 ‘지옥’이다.

 

지옥을 여러 장소로 다시 쪼개는 문제

죽은 자들의 세계를 여러 장소와 상태로 세분하는 관념은 여러 종교에서 발견되며, 중세 로마 가톨릭의 내세관에서도 체계화되었다. 천당과 지옥 이외에 연옥과 림보 등을 두고 죽은 자들의 상태와 처소를 구분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은 하데스, 게헨나, 타르타로스를 각각 독립된 장소로 번역하지 않았다.

hell은 hell이다.

킹제임스성경이 hell로 번역한 것을 다시 여러 장소로 분해하는 순간, KJB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KJB 이전 단계로 돌아가 자신의 해석을 번역문에 집어넣게 된다.

지옥은 여러 장소로 쪼개 놓아야 이해되는 복잡한 세계가 아니다. 죄인들이 형벌을 받게 되는 하나의 지옥이다.

 

킹제임스성경의 선택은 무지(無知)가 아니라 번역이다

번역은 원문(原文)의 모든 단어를 각각 다른 단어로 옮겨 놓는 행간대역이 아니다. 문맥 속에서 전달되는 의미를 대상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KJB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hell을 다시 ‘하데스’, ‘음부(陰府)’, ‘죽은 자들의 처소’와 같은 별도의 장소와 개념으로 분해할 이유가 없다.

특히 ‘음부(陰府)’라는 모호하고 불투명한 한자어는 독자들이 지옥의 실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불필요한 장소 논쟁을 만들어 낸다.

지옥이면 지옥이다.

 

지옥은 하나지만 심판은 똑같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의 지옥에 던져진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심판을 받는가?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장소가 여러 개인 것과 하나의 지옥에서 심판의 정도가 다른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 마가복음 12장 40절에서 주님께서는 “더 큰 정죄(greater damnation)”를 말씀하셨다.
  • 마태복음 11장 22~24절에서는 심판 날에 어떤 자들이 다른 자들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more tolerable)”고 말씀하셨다.
  • 마태복음 23장 15절에는 “두 배나 더 지옥 자식(twofold more the child of hell)”이라는 표현이 있다.
  • 신명기 32장 22절과 시편 86편 13절에는 “가장 낮은 지옥(lowest hell)”이라는 표현도 있다.

이 표현들이 지옥이 여러 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greater damnation과 more tolerable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심판에 분명한 차등이 있음을 보여 준다.

 

결론: 하나를 여럿으로 쪼개는 순간

킹제임스성경은 hell이라고 말한다.

게헨나로 불렸든, 하데스로 불렸든, 타르타로스로 불렸든 킹제임스성경은 그것을 번역하면서 hell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선택했다.

그런데 KJB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원어(原語) 단어를 다시 꺼내 각각 별도의 장소와 개념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것은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지옥은 하나다.

 

그러나 하나뿐인 그 지옥에서 하나님의 심판까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은 아니다.

성경에는 greater damnation이 있고, more tolerable 한 심판이 있으며, lowest hell이라는 표현도 있다.

하나의 지옥, 그러나 차등적인 심판.

지옥이라는 하나의 실체를 여럿으로 쪼개는 순간, 성경을 믿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