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 한 조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 때
제네바 탐방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숙식비였다. 아름답고 역사적인 도시인 것은 분명하지만 여행자에게 제네바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다행히 네 사람이 자동차로 여행하고 있어서 비싼 돈을 내면서 제네바 시내에서 자고 먹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 인근 프랑스의 작은 농촌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자동차 여행이 주는 특권이다. 제네바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화려한 국제도시의 풍경은 사라지고 조용한 프랑스 농촌이 나타난다. 숙박비도 훨씬 저렴했다.

돈을 아끼려고 선택한 뻬홍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뜻밖에도 여행의 즐거움을 한 단계 높여 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 아래층에는 작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우리 일행 밖에 없었다. ‘시골 호텔에 딸린 그저 그런 식당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 시간이 되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테이블이 가득 찼다.
관광객을 상대로 겨우 유지되는 식당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찾아오는 식당이라는 확신이 들자 기대감이 생겼다. 우리는 함께 먹을 음식으로 퐁듀(Fondue)를 주문했다.
사실 내게 퐁듀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었다. 예전에 스위스 루체른에서 먹어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의 인상은 간단했다.
‘이걸 왜 먹지? 지독하게 짜기만 한데.’
그래서 이번에도 맛있는 저녁 식사를 기대하기보다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더 먹어 보자는 정도였다.
그러나 냄비가 놓이고 빵을 찍어 입에 넣는 순간 그 편견은 완전히 깨졌다.
1. 묵은 빵을 바라보다 떠오른 엉뚱한 생각
라면 서너 개는 족히 끓일 만한 큼직한 냄비에서 치즈가 부드럽게 녹고 있었다. 각자 긴 꼬챙이에 빵 조각을 꽂아 뜨거운 치즈에 푹 담갔다가 꺼내 먹었다.
맛있었다. 빵도 맛있었고 치즈도 훌륭했다. 예전에 루체른에서 먹었던 퐁듀와는 전혀 다른 음식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먹다 보니 내 눈에 자꾸 빵이 들어왔다. 꼬챙이에 꽂힌 투박한 빵 조각들을 보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음식, 혹시 남은 빵 처리하려고 만든 것 아니야?”
반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다. 일행은 웃었다. 딱딱해진 빵도 뜨거운 치즈에 집어넣으면 부드러워진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도 먹기 어려워진 묵은 빵을 이렇게 먹었던 것 아닐까?
그날 저녁 식사하면서 그저 웃고 넘어갔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궁금해서 퐁듀의 역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식사 한 끼가 작은 역사 여행으로 바뀌었다.

2. 빵과 치즈와 와인이 한 냄비에서 만나다
퐁듀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한 곳으로 정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퐁듀 문화는 스위스 서부의 프랑스어권과 프랑스 사부아를 비롯한 서부 알프스 지역에 널리 자리 잡고 있다.
흥미롭게도 치즈와 와인을 함께 조리하는 퐁듀 비슷한 음식의 오래된 기록은 프랑스어권뿐 아니라 1699년 취리히의 요리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취리히는 독일어 사용 지역이다.
‘어느 마을의 누가 처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퐁듀가 알프스 지역 사람들의 생활환경과 잘 맞는 음식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산악지역에서는 따뜻한 계절에 만들어 저장한 치즈가 겨울의 중요한 식량이었다. 빵 역시 오래 두면 수분이 빠져 딱딱해진다. 알프스 농가에서 겨울철 딱딱해진 빵을 녹인 치즈와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식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던졌던 농담이 아주 엉뚱한 상상만은 아니었다.
딱딱한 빵은 치즈에 적시면 다시 먹기 좋아진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와인이다.
퐁듀에서 와인은 옆에 놓고 마시는 술에 그치지 않는다. 아예 치즈를 녹이는 냄비 속으로 들어간다. 화이트 와인은 풍미를 더하고 치즈가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데도 도움을 준다.
결국 퐁듀의 기본적인 구성은 아주 단순했다.
빵, 치즈, 와인.
오늘날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근사한 유럽 음식이지만, 재료 하나하나를 떼어 놓고 보면 대단히 서민적인 생존 음식이다. 그리고 ‘퐁듀(fondue)’라는 말 자체도 프랑스어 fondre, 곧 ‘녹이다’에서 왔다.
딱딱한 것을 녹이고, 마른 것을 적시고, 저장해 둔 식량을 한 냄비에 모아 따뜻하게 먹는다. 알프스의 추운 겨울을 생각하니 음식의 모양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3. ‘스위스 국민 음식’이 되기까지
찾아볼수록 재미있는 사실이 또 나타났다. 나는 퐁듀라면 당연히 아주 오래전부터 스위스 사람 누구나 먹던 ‘스위스 국민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전국적인 국민 음식의 이미지는 생각보다 훨씬 최근에 만들어졌다.
20세기 스위스 치즈 업계가 퐁듀를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군대에서도 퐁듀를 함께 먹으면서 원래 특정 지역의 색채가 강했던 음식이 점차 언어권을 넘어 스위스 전체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루체른에서 먹었던 퐁듀와 이번 프랑스 시골에서 먹은 퐁듀가 비교가 된다.
퐁듀라는 음식이 알프스 사람들의 생활 음식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다시 스위스 전체의 국민 음식으로, 오늘날에는 세계의 여행자들이 찾아 먹는 음식으로 변해 왔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내가 서로 다른 두 도시에서 경험한 서로 다른 퐁듀도 어쩌면 그 긴 역사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 준 것인지 모른다.
4. 종교개혁의 땅도 만나다
퐁듀의 역사를 찾아보다 보니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퐁듀가 자리 잡은 지역의 일부가 내가 여행에서 찾아다닌 종교개혁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겹쳐 있었다.
제네바는 칼뱅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고, 인접한 보(Vaud) 지역 역시 개혁 신앙의 영향을 깊이 받은 곳이다. 알프스 남서쪽 피에몬테 산악지역에는 오랜 세월 신앙을 지켜 온 왈덴시안 공동체도 있었다.
물론 알프스에는 가톨릭 지역도 있었고 개혁교회 지역도 있었다. 그렇지만 가난한 농부에게 겨울은 신앙의 구분 없이 추웠을 것이고, 빵과 치즈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식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종교개혁 시대의 사람들이 조금 더 가까이 느껴졌다.
우리는 종교개혁이라고 하면 칼뱅의 신학과 루터의 95개 조 같은 거대한 사건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크리스천에게도 매일 저녁 식탁이 있었다. 그들도 추우면 불을 피웠고, 배가 고프면 빵을 먹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치즈를 저장했고, 포도가 나는 지역에서는 와인을 만들고 마셨다.
내가 먹고 있던 빵과 치즈와 와인은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게 해 주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그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하루는 결국 먹고 자고 일하며 이어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퐁듀 냄비를 바라보니, 성경의 식탁이 떠올랐다.
5. 성경의 wine을 실제 식탁에서 생각하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와인 문화권에서 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서 wine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곧바로 ‘술인가, 포도즙인가’, ‘마셔도 되는가’ 같은 논쟁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프랑스 농촌에서 퐁듀를 먹으면서 나는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의 식탁에서 wine은 어떤 존재였을까?

내 눈앞에서는 그 답의 일부가 냄비 안에서 끓고 있었다. 와인은 관념적 논쟁을 위한 단어가 아니었다. 마시기도 하고 음식에 넣기도 하는 실제 삶의 일부였다.
물론 프랑스의 퐁듀가 예수님 시대 유다 땅의 음식은 아니다. 시대도 장소도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 한국인이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 하나를 눈으로 보고 혀로 경험하게 해 주었다. 빵과 와인이 일상의 식탁에 자연스럽게 놓이는 문화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성경을 읽으니 익숙한 구절도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요한복음 2장의 혼인 잔치에서 이렇게 말한다.
“Every man at the beginning doth set forth good wine; and when men have well drunk, then that which is worse: but thou hast kept the good wine until now.”
본문에는 good wine이 있고 그보다 덜 좋은(worse) 것이 있다. 와인이 일상의 음식문화였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와인과 그렇지 못한 와인의 차이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와인 자체를 낯설거나 금기시되는 음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에베소서 5장에서는 와인에 취하여 지나치게 처신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날 프랑스 시골의 식탁을 경험하고 나니 성경 속 wine도 오늘날 한국인의 술 문화나 금주 문화 가운데 어느 한쪽에 서둘러 집어넣기보다, 먼저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먹고 마시며 살아갔던 식탁 위에 놓고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 한 끼 저녁이 역사 여행이 되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처음부터 퐁듀의 역사를 조사하려고 그 프랑스 마을에 간 것이 아니었다. 제네바의 살인적인 숙식비를 피하려고 국경을 넘었을 뿐이다.
숙박비를 조금 아껴 보려고 찾아간 프랑스 농촌의 작은 호텔이었다. 호텔 아래에 식당이 있으니 저녁이나 먹자고 들어갔다. 거기서 퐁듀를 주문했다. 빵 조각 하나를 들여다보다가 농담을 했다.
“이거 묵은 빵 처리하려고 만든 음식 아니야?”
그 한마디 때문에 궁금해졌다. 궁금하니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알프스 사람들의 겨울이 나왔고, 치즈와 와인의 역사가 나왔다. 더 찾아보니 퐁듀가 스위스의 국민 음식이 되어 가는 과정이 나왔다. 지도를 펼쳐 보니 내가 여행하고 있던 종교개혁의 공간과도 일부 겹쳤다. 그러다가 성경의 wine까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내가 먹은 것은 퐁듀 한 냄비였지만, 식사가 끝난 뒤에는 그전에는 몰랐던 스토리가 하나 생겼다.
이런 것이 여행의 진짜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유명 관광지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다. 길을 걷다가 건물 하나를 유심히 보고, 식탁에 올라온 빵 한 조각을 이상하게 여기고, 사람들이 왜 이런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지 궁금해하는 것.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 그것을 찾아보는 것.
자세히 보고, 질문해 보고, 탐색하는 순간 여행은 단순한 구경에서 나만의 체험으로 바뀐다.
어쩌면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곳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본 것 가운데 몇 가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느냐 인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꼬챙이 끝에 꽂혀 있던 빵 한 조각.
그 빵 한 조각에서 시작된 질문이 알프스의 식탁을 거쳐 종교개혁의 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성경의 식탁까지 나를 데려갔다.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만난 퐁듀 한 냄비. 그것은 맛있는 저녁 식사였고, 작은 역사 공부였으며, 무엇보다 관찰과 탐색이 여행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를 보여 준 잊지 못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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