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믿은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믿어졌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교리 면에서 매우 혼란스러운 주장까지 나온다.
- 믿다 = 사람이 스스로 행하는 인간적 믿음, 곧 행위
- 믿어지다 = 하나님에 의해 주입되는 진짜 믿음, 곧 은혜
그런데 이런 구분은 성경의 단어 “believe”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어에서 마음의 변화를 강조한 표현을 가지고 성경에 없는 ‘두 종류의 믿음’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1. 언어적인 면에서 확인해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동사 ‘믿다’와 그 피동사 ‘믿기다’가 표제어로 올라 있다. ‘믿기다’를 이렇게 설명한다.
믿기다 - 어떤 사실이나 말이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거나 그렇다고 여겨지다. ‘믿다’의 피동사.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 “너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
-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크리스천들이 자주 사용하는 “믿어지다”라는 표현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독립된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물론 실제 한국어에서는 ‘믿어지다’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어떤 사실을 억지로 믿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 심리적 변화를 강조할 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신앙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날 복음이 믿어졌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문제는 ‘믿어졌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 있지 않다.
그 표현을 ‘믿었다’와 구분하며 다른 차원의 믿음으로 교리화하는 데 있다.
- “나는 복음이 믿어졌다.”
- “나는 복음을 믿었다.”
두 문장의 표현 방식과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어난 사건은 하나다.
그 사람이 복음을 믿은 것이다. ‘믿어졌다’라는 한국어 표현 하나 때문에 성경에 없던 또 하나의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2. 영어 문장 비교로 명확해진다
영어로 비교하면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 I believed. → 나는 믿었다.
- I came to believe. → 나는 믿는 데 이르렀다. → 나는 결국 믿었다.
- I was believed.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었다.
세 문장의 차이는 분명하다.
I believed는 내가 믿은 것이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어떤 과정이나 생각을 거쳐 마침내 믿었다는 변화를 강조하려면 I came to believe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장 역시 수동태가 아니다. I가 여전히 believe의 주체이다.
반면 I was believed가 진짜 수동태이다. 그런데 그 뜻은 “내가 믿게 되었다”나 “나에게 믿음이 들어왔다”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성경의 단어 believe 자체에서는 ‘내가 믿는 믿음’과 ‘나에게 주입되어 믿어지는 믿음’이라는 두 종류의 믿음을 찾아낼 수 없다.
한국어의 “믿어졌다”라는 표현 때문에 마치 ‘믿었다’와 다른 종류의 수동적 믿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어의 believe 문장과 비교해 보면 그런 교리적 구분의 근거는 사라진다.
한국어의 표현 구조에서 생긴 일종의 ‘언어적 착시 현상’을 교리적 차이로 오해한 것이다.
3. believe의 수동태 ‘are believed’의 진짜 의미
킹제임스성경에는 believe의 수동태가 실제로 등장한다.
"…those things which are most surely believed among us…" (누가복음 1:1)
여기서 are believed는 수동태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짜 믿음이 어떤 사람에게 주입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문장 구조를 능동태로 바꾸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We believe those things. (우리가 그 일들을 믿는다.)
믿음의 대상인 those things가 문장의 주어 자리에 놓였기 때문에 수동태가 된 것뿐이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10절도 마찬가지다.
"our testimony among you was believed"
우리의 증언(our testimony)을 너희가 믿었다는 말이다. 능동태로 풀어쓰면 간단하다.
You believed our testimony.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믿었다.)
여기에도 어떤 신비한 ‘수동적 믿음’이 사람에게 주입되었다는 개념은 없다.

4. 성경이 말하는 믿음 : believed, believed not
성경에서 죄인이 구원받는 믿음을 말할 때 명확하고 단순한 표현을 사용한다.
- “Abraham believed God…” — 아브라함이 믿었다.
- “…even we have believed in Jesus Christ…” — 우리가 믿었다.
- “…with the heart man believeth unto righteousness…” — 사람이 마음으로 믿는다.
예수님의 질문 역시 분명하다.
“Believest thou this?” (요한복음 11:26)
"이것이 믿어지느냐?”가 아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이다.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믿어지지 않는 상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성경은 반복해서 believed와 believed not을 구별할 뿐이다.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
5. 믿는 것은 ‘행위’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굳이 ‘믿었다’가 아니라 ‘믿어졌다’라는 표현에 교리적 의미까지 부여하려고 할까?
그 배경에는 이런 불안이 있다.
‘내가 믿었다고 하면 그것도 내가 한 행위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성경은 이미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But to him that worketh not, but believeth on him that justifieth the ungodly, his faith is counted for righteousness.” (로마서 4:5)
문장 자체가 놀랄 만큼 분명하다. worketh not — 일하지 아니하지만, but believeth — 믿는 자.
성경은 일하는 것(worketh)과 믿는 것(believeth)을 서로 구별해서 놓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믿음이 율법적 행위(work)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이미 믿음과 행위를 구별하고 있다.
“내가 믿었다고 하면 행위 구원이 된다”는 걱정 때문에 성경에 없는 또 하나의 ‘수동적 믿음’, 또는 한 단계 높은 믿음을 만들어 낼 이유가 없다.
결론 : 복음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
“복음이 믿어졌다”라는 표현은 개인적인 경험을 고백하는 말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오랜 의심 끝에 복음을 믿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어느 순간 복음이 분명하게 이해되면서 믿었을 수도 있다.
그런 변화 과정을 강조할 때 “믿어졌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표현을 가지고 ‘믿다’와 ‘믿어지다’를 서로 다른 차원의 믿음으로 나누는 순간 복음은 복잡해진다.
한국어 표현상의 차이를 근거로 킹제임스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두 종류의 믿음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다시 영어 문장을 놓고 보면 간단하다.
- I believed. → 나는 믿었다.
- I came to believe. → 나는 믿는 데 이르렀다. 나는 결국 믿었다.
- I was believed. → 사람들이 나를 믿었다.
“믿어졌다”, “믿게 되었다”라는 특별한 체험적 표현을 풀어 말하면 결국 “믿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죄인에게 모호한 ‘수동적 믿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주님의 질문은 오늘도 분명하고 단호하다.
“Believest thou this?” 네가 이것을 믿느냐?
‘믿다’와 ‘믿어지다’라는 표현의 차이를 서로 다른 종류의 믿음으로 만들어 복음을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누구든지 마음으로 복음을 믿으면(believe) 구원에 이른다. 또 어느 순간 그리스도의 복음이 믿어졌다고 고백해도 역시 구원에 이른다.
결국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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