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과 바울서신의 부연설명 그리고 장, 절
성경 형성의 결과물도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성경기록은 대언자와 사도가 기록한 본문뿐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맞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어서 주신 것은 성경 본문(text) 그 자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성경책은 단순히 본문만 덩그러니 존재하지 않는다. 그 본문이 역사 속에서 교회에 의해 보존되고 정경(正經)으로 형성되어 전달된 결과물이다.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본문의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본문을 감싸고 보호하기 위한 틀을 이루어 전달된 성경의 형식들을 모두 배제해야 하는가?
성경책이 형성되어 전달된 결과물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책들의 배열 순서와 권위
사복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도행전, 바울서신, 일반서신, 그리고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신약 배열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비록 사도들의 친필 원고에 개별적인 책의 순서가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이 배열 순서는 교회가 성경을 지키고 성도들에게 올바른 신앙의 체계를 전달하기 위해 고심 끝에 확립한 역사적 결과물이다.
4세기 아타나시우스는 오늘날과 동일한 신약 27권의 목록을 제시하였고 이후 지역 공의회를 거치며 현재의 성경책 목록과 배열 순서가 확립되어 갔다. 이는 동, 서방 교회를 넘어 종교개혁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전 세계 교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책 배열 순서를 진리를 담은 틀로 받아들인 것은, 성경의 권위를 지켜온 역사적 증거이다.
책 배열 순서가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본문을 소중히 보존한 교회들이 성경 형성의 결과물로서 이 배열 순서를 받아들인 것이다.
2. 책 제목
‘창세기(기원 Genesis이라 하는 모세의 첫째 책)’, ‘로마서(로마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신)’와 같은 제목은 모세나 바울이 친필 원고에 직접 붙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목들은 초기 필사본 전승 속에서 점차 정착되어, 칠십인 역(LXX)과 라틴어 불가타를 거쳐 킹제임스성경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계승되었다.
이는 고대 교회가 성경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보존해 온 공인된 명칭이며, 오늘날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제목들을 성경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특히 일부 초기 파피루스 사본에서도 책 제목이 본문의 머리말로서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고대 교회가 성경을 분류하고 식별하기 위해 초기부터 제목을 공적인 명칭으로 수용했음을 시사한다. 제목 자체가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본문을 소중히 보존한 교회들이 성경 형성의 결과물로서 이 제목들을 성경의 정당한 식별 표지로 받아들인 것이다.
3. 성경의 띄어쓰기와 문단 구분
성경 본문을 읽기 쉽게 나누어 놓은 띄어쓰기와 문단 구분은 현재 알려진 초기 필사본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동서고금 글쓰기 형태는 빈틈없이 빽빽하게 쓰는 것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
4세기경 사본은 문단 구분 기호를 사용하여 단위를 나누는 초기 흔적을 보여주며, 이후 중세의 소문자 사본들은 이를 체계화하였다. 한글 띄어쓰기가 근대 이후에나 정착된 것처럼, 성경 또한 언어문화의 변화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회가 발전시켜 온 성경 전달 형식의 결과물이다.
틴데일 성경은 절 구분 없이 몰아 쓰기 형태였으나, 교회는 말씀을 정확히 가르치고 연구하기 위해 이러한 도구들을 발전시켜 왔다. 띄어쓰기나 문단 구분 자체가 영감으로 기록된 본문은 아닐지라도, 말씀을 신실하게 보존해 온 교회는 이를 성경책 형성의 필수적인 결과물로 수용하였다.
4. 바울서신의 부연설명
바울서신 끝에 첨부된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로마에서 써서 보내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에서 써서 디모데 편에 보내다”와 같은 부연설명은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의 임의적인 창작이 아니다.
이는 성경이 정경으로 확립되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본문을 보호하고 그 역사적 배경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 교회가 수 세기 동안 지켜온 필사본 전통 형식이다.
고대 그리스어 및 라틴어 필사본 전통에 바울 서신의 부연설명이 발견된다. 에라스무스는 이 전통을 존중하여 본문에 수록하였고(1516년), 이는 틴데일 성경(1526년)을 거쳐 킹제임스성경에 이르기까지 신실하게 계승되었다. 이는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도록 돕는 오래된 전통이다.
바울서신의 부연설명이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본문을 소중히 보존한 교회들이 성경 형성의 결과물로서 이 부연설명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5. 장(章)과 절(節)
많은 이들이 부연설명은 후대의 것이므로 무시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장과 절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장 구분은 13세기 스테판 랭턴에 의해, 신약 절 번호는 1551년 로버트 스테파누스에 의해 도입되었으며 1560년 제네바 성경을 통해 정착되었다. 이는 책 제목과 바울 서신 부연설명 보다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형식임에도 현대 성경들의 표준으로 수용된다.
장과 절의 구분이 성경의 가독성을 위한 역사적 보존의 결과물이라면,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전해온 바울 서신의 부연설명이나 책 제목을 배제하는 것은 동일한 역사적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불공정한 처사이다. 장 절 구분이라는 유용한 틀을 받아들인 것처럼, 교회는 성경 형성의 결과물인 모든 형식들을 존중해 왔다.
장, 절이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본문을 소중히 보존한 교회들이 성경 형성의 결과물로서 받아들였고 지금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6. 성경이 증언하는 ‘형식(form)’의 가치
바울은 디모데에게 “건전한 말들의 틀(form of sound words)을 굳게 붙들고”(딤후 1:13)라고 당부하였다. 우리는 장과 절을 영감 받은 본문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오랫동안 보존해 온 틀이고 형식이기 때문에 존중한다.
성경책이 형성된 결과물을 존중하는 것은 본문과 동일한 영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말씀을 전달하시도록 교회 안에서 보존하게 하신 형식의 결과물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7. 일관성의 문제
“후대에 추가되었고 영감으로 주어진 본문이 아니라 무가치하다”는 논리로 책 제목, 배열 순서, 바울 서신의 부연설명을 무시한다면, 훨씬 더 후대에 형성된 장과 절 또한 사용하지 않아야 논리가 일관된다.
반대로 장과 절을 성경 전달을 위한 역사적 보존의 결과물로 인정한다면, 책 제목, 책의 순서, 문단 구분, 그리고 부연설명 역시 동일한 역사적 기준에서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결론
성경의 최종 권위는 본문에 있다. 그런데 우리가 들고 있는 성경은 그 본문이라는 생명과, 그것을 우리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본문을 지켜온 형식과 틀이 역사 속에서 함께 보존된 결과물이다.
오늘날 성경의 본문마저 고의적으로 바꾸면서 하나님의 의도를 훼손하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교회 역사 속에서 보존해 오신 성경 형성의 결과물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손대지 않고 그 원형을 지키겠다는 신앙적 결단이다.
우리는 본문의 절대적 권위를 굳게 붙들면서도, 그 본문을 오늘 우리 손에까지 전달하기 위하여 형성된 성경책의 결과물을 감사함으로 존중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