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시 보는 역사

물 침례와 주의 만찬 — 형식 논쟁을 넘어 본질로

by 김재근의 Insight 2026. 4. 30.

침례교회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규례(의식)만을 고수한다.

물 침례와 주의 만찬이다.

 

이 두 가지를 실행하는 것을 신앙의 정체성으로 삼는 교회가 적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논쟁이 시작된다.

누구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가,

목회자만 집례 할 수 있는가,

물속에 어떻게 들어 가는가,

흐르는 물이어야 하는가,

몇 살부터 가능한가,

구원 이후 언제 받아야 하는가

 

주의 만찬도 마찬가지다.

매주 해야 하는가,

빵은 무엇을 써야 하는가,

포도주는 가능한가,

잔은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

교인이 아니면 참여할 수 없는가

 

이처럼 세부 실행으로 들어가면, 의견은 나뉘고 교회는 갈라지고 교파는 분리된다.

 

 

1. 미시적 논쟁을 넘어서

이 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바로 거시적, 역사적 안목이다.

물 침례와 주의 만찬을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라는 질문 이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왜 이 두 가지인가?

 

 

2. 교회 역사가 남긴 공통 유산

침례교회만 두 가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 장로교회도 동일하다. 다만 용어만 다르다.

* 침례교회 → “규례(ordinances)”

* 장로교회 → “성례(sacraments)”

 

그러나 내용은 같다세례(침례)와 성찬(주의 만찬), 단 두 가지

주요 장로교회 교리의 표준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도 이를 분명히 밝힌다.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성례는 밥티슴과 주의 만찬, 오직 두 가지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오직 두 가지(only two)라는 선언이다.

 

 

3. 왜 ‘두 가지’인가 — 종교개혁의 본질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16세기로 올라가야 한다.

당시 로마 가톨릭은 일곱 가지 성사를 주장했다

* 세례 * 견진 * 성체 * 고해 * 종부 * 신품 * 혼인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명확히 제정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라고 맞섰다.

이 갈등은 단순한 예식 문제가 아니었다.

성경의 권위, 구원의 구조, 신앙의 기준을 둘러싼 근본적 충돌이었다.

 

그리고 이 격돌 속에서 로마 가톨릭은 자신들 교리를 정립하기 위해서 트렌토 공의회를 열었다.

이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일곱 성사를 부정하는 자는 파문될지어다(anathema).”

 

,  7 vs 2

이것이 당시의 핵심 쟁점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그 시대의 싸움은  “물에 어떻게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교회 의식을 몇 가지로 인정할 것인가였다.

 

 

4. 오늘의 착각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종종 이 순서를 거꾸로 만든다.

본질은 잊어버리고 형식으로 서로를 판단한다.

* 침례 방식이 다르다고 선 긋고  * 성찬 방식이 다르다고 분리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쟁점의 핵심이 아니었다.

 

 

5. 균형 잡힌 결론

물 침례와 주의 만찬은 교회가 임의로 만든 의식이 아니다.

교회 역사가 보존해 온 공통 유산이며  종교개혁이 지켜낸 핵심적 신앙 고백이다.

 

따라서 강조의 순서는 분명하다.

먼저: “두 가지

❷ 그다음:시행 방식

이 순서가 바뀌면 논쟁은 깊어지고 시야는 좁아진다.

 

 

6. 마지막 정리

역사를 아는 사람은 자기 위치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나만 옳다는 생각은 대개 역사를 모를 때 생긴다.

 

물 침례와 주의 만찬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형식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본질을 붙들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두 가지

 이 단순한 고백이 교회를 하나로 묶어온 기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