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구원 교리의 왜곡을 경계하며
‘무죄가 입증되었다’와 ‘무죄라고 인정받았다’는 같은 의미인가?
영어 사전에서 justify를 찾으면 “정당함을 입증하다”라는 뜻도 나온다. 영어 교실에서 공부할 때는 그렇게 배워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성경 번역, 특히 로마서의 구원 교리 문맥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성경 번역의 적합성은 사전에서 가능한 뜻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는 문제가 아니다. 철저히 그 문맥이 요구하는 교리적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마서의 justify는 죄인의 정당함이 입증되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을 향해 “의롭다”라고 인정하시고 선언하시는 법정적 판결이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표준역킹제임스성경>은 로마서에서 justify, justified 계열 단어를 “정당함을 입증하다, 입증받다”라고 번역했다. 이는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번역자의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이 표현은 로마서의 핵심 교리인 ‘의롭다 하심(justification)’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전달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에 왜 이 번역어에 의문을 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힌다.
1. 로마서의 justify는 ‘선고’하는 법정적 용어이다
로마서의 구원 문맥은 엄숙하고 흠 없는 대법정이다. 바울은 로마서 8:33-34에서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무슨 일로 고소하겠느냐?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정죄하는 자가 누구냐?”라고 묻는다. 여기에는 명확한 법정 용어들이 짝을 이룬다.
- charge : 혐의를 제기하고 고소, 고발함.
- justify : 전가(轉嫁)된 의(義)를 근거로 무죄라고 인정하고 의롭다고 선언함.
- condemn : 정죄하고 유죄를 선고함.
이 흐름은 죄인이 자신의 결백과 정당함을 스스로 밝혀내는 문맥이 아니라,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최종 판결을 내리시는 법정의 문맥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justify는 죄인이 무엇을 입증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선고하시는가의 문제이다.
2. “입증”과 “인정”의 차이
입증(立證)은 증거를 내세워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뜻한다. 법정에서는 소송 당사자가 증거를 제시하여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능동적 절차이다.
반면 인정(認定)은 어떤 사실이나 판단을 옳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며, 법정에서는 그 판단이 판결로 나타난다.
로마서의 법정에서 재판장은 하나님이시다. 죄인은 스스로 결백을 입증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義)를 근거로 “의롭다”라고 판단하시고 선언하시는 위치, 곧 의롭다고 인정받는 위치에 있을 뿐이다.
3. “입증”은 인간 안에 본래 정당함이 있었다는 오해를 낳는다
우리말에서 “정당함이 입증되었다”는 말은 그 사람 안에 이미 정당함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증거를 통해 확인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로마서가 선언하는 인간은 결코 본래부터 정당함을 갖춘 존재가 아니다. 로마서는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으며, 단 한 사람도 의롭지 않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롬 3:10)
따라서 “정당함을 입증받았다”라는 번역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 안에 본래 정당함이 있었는데 믿음을 통해 그것이 확인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복음은 죄인의 정당함이 드러나는 사건이 아니다. 의(義)가 전혀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의(義)가 전가(轉嫁)되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건이다.
4. 로마서의 의(義)는 회계학적 전가(轉嫁)이다
입증은 이미 있는 것을 밝히는 것이지만, 전가는 내 장부에 없던 것을 외부에서 계산하여 일방적으로 기입해 주는 것이다.
로마서 4장은 count(세기), reckon(계산하기), impute(impute(적어 넣기)와 같은 회계학적 언어로 구원을 설명한다.
나의 텅 빈 계정 속으로 그리스도의 의(義)가 송금되어 기입되는 것, 이것이 의롭다 하심이다. 나의 장부에 무엇이 있는지를 입증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의(義)를 내 장부에 기록하시고 그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구조이다.
또한 로마서 5:1의 being justified가 수동태인 것도 같은 이유이다. 죄인이 스스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믿음은 나의 정당함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義)가 전가되는 통로이다.
5. 번역어에는 ‘의롭다’의 의미가 분명히 살아 있어야 한다
복음에 있어서는 사전적 의미보다 교리의 순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경 번역에서 복음과 관련하여 justify 계열 단어를 옮길 때는 어떤 표현을 선택하든 ‘의롭다’라는 개념이 분명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는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justify는 인간의 도덕적 결백을 증명하는 문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가 죄인에게 전가되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사건이다.
‘의롭다’라는 핵심 개념이 번역에서 사라지는 순간,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중심축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론
로마서는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라고 최종 선언을 받는 복음의 재판정이다. 그러므로 로마서의 justify는 “정당함을 입증받다”가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받다”, “의롭다 하심을 얻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과 교리에 더욱 부합한다.
물론 영어 단어 justify가 다른 문맥에서는 “정당함을 입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칭의(稱義) 문맥에서만큼은 이러한 번역은 한국어 독자에게 인간 안에 본래 정당함이 존재했고 그것이 입증된 것처럼 이해될 위험을 안고 있다.
‘무죄가 입증되었다’와 ‘무죄라고 인정받았다’는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다.
과연 교회 강단에서 “정당함을 입증받았다”라는 번역이 담긴 성경을 펼쳐 들고 설교하면서 성도들에게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입증받은 것입니다.”라고 담대하게 선포할 설교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번역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복음의 핵심인 “의롭다 하심” 교리를 어떤 언어로 전달할 것인가 하는, 복음의 생사가 걸린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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