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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역사

실바누스에서 펜실베이니아까지, 숲의 사람, 숲의 신

by 김재근의 Insight 2026. 9. 24.

 
교회 역사를 읽다 보면 뜻밖의 이름들을 만나게 된다. 초대교회의 일꾼들 가운데 고대 신화 속 신들과 연결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볼로(Apollos),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 그리고 실루아노(라틴어와 영어로는 Silvanus로 표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의 이름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뒤 이름을 바꾸고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이 아니다. 그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겼다.
 
이름이 어디에서 나왔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누구를 믿고 누구를 섬기느냐였다.
이 가운데 실라(Silas)로도 알려진 ‘실루아노’의 라틴어 이름 실바누스(Silvanus)는 ‘숲’과 관련된 이름이다. 실바누스(Silvanus)는 라틴어 silva에서 파생된 이름인데 silva는 ‘숲’을 뜻한다. 

숲을 가리키는 ‘실바(silva)’라는 단어가 지금도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숲’이라는 단어를 따라가다 보면 성경을 다시 보게 된다.


 

1. 신들의 이름을 가진 교회의 일꾼들

앞서 보았듯이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이름을 자세히 보면 오늘날 크리스천에게는 뜻밖으로 느껴지는 이름들이 있다.

아볼로(Apollos)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언급될 정도로 뛰어난 성경 교사였다.

“말을 잘하고 성경기록들에 능통하더라”

— 사도행전 18장 24절

그런데 아볼로(Apollos)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의 신 아폴로(Apollo)와 연결되는 이름이다. 아폴로는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예언과 음악, 의술과 관련된 중요한 신이다. 후대에는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와 동일시되면서 태양신의 이미지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아볼로(Apollos)의 이름을 문제 삼지 않는다. 고대 신화 속 신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성경기록들에 능통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

빌립보서에 등장하는 에바브로디도 역시 흥미롭다. 그의 이름 Epaphroditus는 고대 그리스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와 연결된 이름으로, ‘아프로디테의 총애를 받은 자(Epaphroditus)’ 정도의 뜻을 가진다.
그런데 바울이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보면 더욱 놀랍다.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는 자요 동료 군사요”

— 빌립보서 2장 25절

아프로디테 여신에서 비롯된 이름을 가진 사람이 바울에게 매우 중요한 동역자였다. 그 이름 때문에 개명했다는 기록도 없다.

실라(Silas), 그리고 실루아노(실바누스, Silvanus)

그리고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나온다. 바울과 함께 빌립보 감옥에 갇혀 한밤중에 하나님께 찬송했던 실라(Silas)다.
사도행전에서는 그를 실라(Silas)라고 부른다. 그런데 바울의 서신으로 가면 이름이 달라진다.

“바울과 실루아노(Silvanus)와 디모데(Timotheus)”

—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

사도행전의 선교팀은 바울(Paul), 실라(Silas), 디모데(Timotheus)였는데, 바울 서신에서는 바울, 실루아노(Silvanus), 디모데로 나타난다.
활동 시기와 장소, 함께한 사람들이 일치하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실라(Silas)와 서신의 실루아노(Silvanus)는 대부분 동일인물이라고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실루아노(Silvanus, 실바누스)’라는 이름이다.


 

2. 실바누스(Silvanus)에서 ‘숲’을 만난다

실루아노의 라틴어 이름 실바누스(Silvanus)는 silva, 곧 ‘숲’과 연결되는 이름이다.
고대 로마에는 실제로 실바누스(Silvanus)라는 신이 있었다. 숲뿐 아니라 농경지와 토지의 경계와 관련된 자연신이었다.

Silvanus

그렇다고 성경의 실바누스가 그 신을 숭배했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신들의 이름에서 유래하거나 신화와 연결된 이름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실바누스(Silvanus)는 그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실바누스(Silvanus)라는 이름 속에서 만난 ‘숲’, 곧 silva는 수백 년 뒤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등장한다.


 

3. Silva(숲)이 대서양을 건너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가 되다

미국 동부에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라는 주(州)가 있다.
이 이름을 뜯어보면 재미있다.
Penn + sylvania

윌리엄 펜(William Penn)이라는 사람은 이 땅을 처음 ‘실바니아(Sylvania)’, 곧 ‘숲의 땅’이라고 부르려 했다. 그런데 찰스 2세가 그의 아버지 이름을 기념해 Penn을 앞에 붙였고, Pennsylvania가 되었다. 그래서 이 이름은 문자 그대로 ‘Penn’s Woods’, ‘펜의 숲’이라는 뜻이 되었다.

펜실베이니아

 
‘sylvania’는 라틴어 silva와 연결되어 ‘숲이 많은 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Pennsylvania는 흔히 “Penn's Woods”, 곧 ‘펜의 숲’이라는 뜻으로 설명된다.
 
1681년 영국 왕 찰스 2세로부터 식민지 헌장을 받은 윌리엄 펜은 이곳에서 종교적 관용과 양심의 자유를 중시하는 공동체를 세우려 했다.
그 중심 도시의 이름은 잘 알려진 대로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이다. 그리스어에서 ‘사랑하다’와 ‘형제’에 해당하는 단어가 결합된 이름으로, ‘형제 사랑’을 뜻한다.
 
윌리엄 펜은 이 이름에서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박해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이상을 담았다.
훗날 이 도시는 미국 독립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1776년 독립선언이 이루어진 곳도 필라델피아였다.
 
그러고 보면 단어 하나가 아주 먼 여행을 했다.

  • silva — 숲
  • Silvanus — 숲의 신
  • sylvania — 숲이 많은 땅
  • Pennsylvania — Penn's Woods, 펜의 숲

 

4. 성경으로 돌아오면 숲의 모습이 달라진다

성경은 '숲'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여준다.
숲이라는 자연 자체보다 그 숲에 부여한 종교적 의미를 문제 삼는다.
성경을 읽다 보면 작은 숲(grove, groves)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신명기에는 이런 명령이 있다.

“주 네 하나님의 제단 가까이에 너는 어떤 나무로든 너를 위해 작은 숲을 심지 말고”

— 신명기 16장 21절

하나님의 제단 가까이에 ‘작은 숲(grove)’를 만들지 말라는 명령이다.
또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모든 높은 언덕 안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자기들을 위해 형상들과 작은 숲들을 세우며”

— 열왕기하 17장 10절

여기서 주목할 표현이 있다.
‘모든 푸른 나무 아래(under every green tree)’
푸른 나무 아래가 반복해서 우상 숭배의 장소로 등장한다.


 

5. 작은 숲(grove)은 단순한 숲이 아니었다

킹제임스성경의 grove를 오늘날 우리가 산책하는 숲과 똑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성경의 ‘작은 숲’은 나무와 관련된 종교적 상징물, 혹은 그런 우상 숭배와 결합된 장소를 가리킨다. 따라서 나무 몇 그루가 있다고 grove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숲 자체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숲에 인간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하나님 아닌 다른 존재를 섬기는 공간과 상징으로 만든 데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런 작은 숲(groves)을 찍어 없애고 불태우라고 명령하셨다.


 

6. 숲을 신으로 만든 사람들

하나님께서 숲을 만드셨다.
그런데 사람은 숲을 바라보다가 그 숲과 들판을 관장한다는 실바누스(Silvanus)라는 신을 만들었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보면서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를 만들었고, 음악과 빛을 신성시하면서 아폴로(Apollo)를 신으로 숭배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정작 그것을 만드신 분을 잊어버렸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자보다 창조물을 더 경배하며 섬겼느니라”

— 로마서 1장 25절

창조자(Creator) 대신 창조물(creature)을 섬겼다.


 

7. 그렇다면 신화에서 나온 이름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고대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었을까?
성경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름이 그 사람을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폴로, 에바브로디도, 실바누스는 이름을 바꾸지 않고 바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이름의 어원이 신화 속 신들 이름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 신에게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의 과거가 아니라 지금 누구를 믿고 누구를 섬기느냐였다.
 
숲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성경이 숲이나 나무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숲을 만드셨다.
푸른 나무에도 아무 잘못이 없다.
그것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실바누스라는 이름 자체도 문제가 아니었다.
바울은 그 이름을 가진 사람과 함께 복음을 전했다.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숲을 바라보다가 그 안에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무가 문제가 아니라 나무를 숭배한 것이 문제이고,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누구를 섬기느냐가 문제이다.
 
문제는 이름이 아니다.
나무도 아니다.
숲도 아니다.
누구를 경배하느냐이다.

“오 산들아, 숲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나무야, 너희는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 이사야 44장 23절